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리 S. 트루먼 (문단 편집) ==== 해군과의 불화 ==== 2차 대전이 끝난 후, 그의 친[[공군]]적 성향[* [[미 공군]]은 1947년 육군 항공대가 독립하여 창설되었다.] 때문에 타군, 특히 [[미합중국 해군|해군]]이 두려움에 떨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국방부(미국)|미국 국방부]]는 전쟁부(육군부)/해군부로 나뉜 것을 통솔하는 '부 위의 부'로서 창설되었는데, 초대 장관이 해군장관 출신 [[제임스 포레스탈]]이긴 했지만 별로 쓸모가 없었다. 되레 트루먼의 공군 위주 성향과 타군에서 "왜 미군은 해군에만 그렇게 돈을 퍼부어대냐"고 징징대는 영향으로 인해 극단적으로는 '''"어차피 2차 대전 만큼 무식한 전쟁이 나지도 않을텐데 해군 예산 확 줄여도 되지 않을까?"'''[* 일본은 망했고, 영국은 쇠퇴한데다 동맹국이고, [[소련]]의 [[소련 해군|해군력]]이란 볼품 없으니. 당시 미 해군 예산만으로 타국가의 모든 국방비를 합한 것보다 많았는데 그 유지비용이 어마어마해서다. 지금도 공군과 육군 예산을 더해도 해군이 더 쓴다.]라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였다. 애초에 포레스탈 장관은 해군장관 시절부터 육군/해군부를 통합하는 안에 기겁하던 것을 초대 국방장관으로 내정하여 겨우 진정시켰던 것이고, 트루먼이 하도 공군을 좋아하며 해군을 등한시하자 1948년 대선에서 제임스 듀이 공화당 대선후보와 비밀리에 짝짜꿍을 했다가 선거 몇주 전 그 일이 들통나서 트루먼이 재선 후 2기 내각을 구성할 때 해임해버렸다. 제2대 루이스 존슨 국방장관은 육군 예비역 [[군법무관|법무]][[대위]] 출신으로, 트루먼의 성격에 딱 맞는 성향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해군이 핵무기 운용이 가능한 [[크고 아름다운]] 폭격기를 운용하기 위해 기획했던 초거대 [[항공모함]]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함을 건조 시작 5일만에 취소시켜버리자, 급기야 참고 참아왔던 해군 [[제독]]들이 폭발하고 만다. 오늘날에도 '''[[제독들의 반란]]으로 회자되고 있는 사건'''으로, 존 설리번 해군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이던 해군[[대장(계급)|대장]] 루이스 덴펠드 제독, 해군[[소장(계급)|소장]] [[알레이 버크]] 제독 등 수많은 제독들이 불명예 제대까지 각오하고 국방부에 항명했으며, 5월에는 포레스탈 前 장관이 베데스다 해군병원에서 [[투신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포레스탈 장관의 헌신을 기리고 명복을 비는 차원에서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이 명명되었다.] 그러자 존슨 장관은 해군에게 염장지르듯이 "앞으로 상륙작전 같은거 없을거니 [[해병대]] 필요 없다. 해군이 할 일은 [[공군]]이 하면 되니까 해군도 필요 없다." 같은 말을 해버렸다. 참고로 1949년은 [[소련의 핵개발|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한 게]] 하반기에 세계에 알려지자 핵무기 무턱대고 쓰다간 인류멸망이 온다는 공포 속에 재래식 무기의 중요성이 다시 조명되던 참이었고 존슨 장관이 저 말을 한 건 12월이었다.[* 물론 타당성 여부를 떠나 항모 안 만들어준다고 항명까지 해대는 해군 자체의 기를 죽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사태가 악화되던 1950년 6월 말에 6.25 전쟁이 벌어졌고, 미군이 참전하여 [[해군]]과 [[인천 상륙작전]]으로 대표되는 해병대, 그리고 무엇보다 해군/해병 항공대의 맹활약을 통해 그런 해군 무용론은 사그라들었지만 오랫동안 이들의 갈등은 남아있었고, [[베트남 전쟁]] 등을 거쳐서야 그 갈등이 조금씩 중화되었다. 당연하지만 소련의 핵개발이니 6.25 전쟁이니 하는 마당에 집안싸움까지 벌어지자 트루먼은 국방부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존슨 장관의 후임으로 육군[[원수(계급)|원수]] '''[[조지 C. 마셜]]''' [[장군]]을 임명하는 초강수를 두어야 했다. 물론 마셜 장군이 현역 군인 신분[* 미군의 각군 원수 계급 진급자는 종신 복무가 보장된다. 이 때문에 트루먼의 후임 대통령인 육군원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도 출마 후 전역, 대통령 퇴임 후 예비역 재소집이라는 방식으로 대통령에 재직했다.]으로 국무장관에 재직하며 [[마셜 플랜]]을 실행했던 경력이 있고, 국방부와 군부에서 명망이 높은 [[먼치킨(클리셰)|먼치킨]]이기는 했지만, 일각에선 [[문민통제]]를 위반하는 인선이라고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국방부가 더욱 혼란해질 것을 걱정한 상원에서 마셜 장군의 국방장관 임명을 특례로 승인했다. 마셜 장군은 건강 문제로 짧게 재임하고 물러나긴 했지만 6.25 전쟁과 역시 육군 원수 출신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 장군의 백악관행이 겹치며 마찰은 점점 중화되었고, 오늘날 미 국방부는 예산 편성만 보면 여전히 [[육방부|해방부]]이긴 하지만 각 군별로 균형은 비교적 잘 맞게 배정되어 있으며 협력체계도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훗날 [[니미츠급 항공모함]] 8번함 CVN-75가 이 대통령의 이름을 땄는데, 하필이면 이 배의 원래 이름이 바로 취소시킨 항모 이름과 같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대통령이나 유명 인사의 이름을 붙이자는 정책 때문에 개명당했다고. 참고로 이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라는 이름은 1대함을 빼고는 모조리 저런 식으로 취소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그래서 미 해군에서는 한때 '트루먼이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를 두 번 죽였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